숲은 아무 말 않고 잎사귀를 보여준다.
저 부신 햇살에 속창까지 길러 낸 푸르른 투명함
바람 한 자락에도 온 세상 환하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 앞에서
내생 맑게 씻어 내고 걸러 낼 것은 무엇인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저것이 어치인지 찌르레기인지
소리 떨리는 둥그런 파문 속에서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한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을 흔들어 준다

어제는 산 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깊은 골 백도라지조차 흔들어 주니
내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맑은 꽃 한 송이 우주속깊이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눈빛에 취해
면경처럼 환한 마음일 때라야 들려오는 낭랑한 청청한 소리여
이 고요 지경을 여는 소리여
그러면 숲의 침묵이 이룬 외로운 봉우리 하나
이젠 말쑥하게 닦을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내 석삼년 벙어리 외로움일지라도
이숲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숲은 다만 시원의 솔바람 소리를 들려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