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랑싸랑 싸락눈 내려 쌓이던 겨울
털모자도 가죽장갑도 없었지 양 볼엔
차가운 솜털만 보숭거렸지 스물 한 살
곤색 점퍼 위로 나뒹굴던 싸락눈만으로도
가슴엔 쩍쩍 금이 갔지 붉게 아팠지
아픈 마음으로 역전 대성다방
수직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멈칫멈칫 미닫이문 열고 들어서면
톱밥난로 푸스스 타오르던 한 쪽 구석
하얀 손들 번쩍, 올려지곤 했지
옆구리엔 비닐커버의 노트 한 권씩
끼어 있었지 두툼한 노트 속엔
토닥거리다 만 화장기 가득한 서정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내일이며 역사를 마구 지껄여 대다가
더런 노트를 바꿔 읽으며 침을 튀기기도 했지
조국이니 민중이니 하는 말들은 언제나 가슴을 쳤고
급기야 반유신의 불화살로 날아가고 싶어
몸살이 나기도 했지 다방의 문을 닫는
통금이 가까운 밤, 역전 통으로 걸어나오면
금방과 양복점으로 가득한 거리에선
기다릴 수도 없이 멈출 수도 없이
길이 끊겼지 자꾸만 내려 쌓이던 눈더미
눈알 부라리며 내려다보는 가로등 불빛만으로도
가슴의 상처는 쉽게 덧났지 터덜거리는
구두코를 따라 무심코 걷다 보면
성탄을 알리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마음 절로 솟기도 했지
이제 대성다방은 없지 싸락눈 내리던 겨울
모자도 장갑도 없이 두 손 호호 불어가며 키우던
꿈도 미래도 정열도 너풀거리는 은발에 덮여 버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