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이 꽌시를 찾아내어 들이미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국 사회는 구석구석까지 꽌시로 연결되어 있다.

보통 새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어떤 일부터 시작할까? 아마 대개는 그 사업이 과연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타진해 보고자 시장 조사부터 착수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금과 인력 및 판매계획들을 짜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자금 확보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그럼 중국인은 어떻게 무슨 일부터 시작할까?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지 간에 중국인은 제일 먼저 꽌시(관계)를 찾으려 한다.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자기가 갖고 있는 꽌시를 모두 동원해서 그 일에 필요한 꽌시를 잡으려 한다. 만일 그렇게 해서도 꽌시를 잡지 못하면 자신은 그 일을 추진할 능력이 없다고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그들에겐 꽌시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들에게 꽌시는 모든 일의 시작이고 끝이기도 하다. 꽌시가 있어야 일을 시작하지만 또 일을 하면서 꽌시를 많이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꽌시(관계), 관계라는 뜻의 이 말은 중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인맥 관계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의미는 현격히 다르다. 우리 사회에선 인맥보다 자금이 많거나 그 방면에 전문적인 능력, 또는 정보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인맥은 부수적이거나 수단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중국의 그것은 모든 일의 절대적인 전제이자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꽌시(관계)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바쁘고 힘겨운 현대 생활 속에서 가족과 친인척들과도 제대로 왕래도 못하며 산다. 중국적인 의미의 꽌시를 만들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줄도 없고 빽도 없이' 산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꽌시가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무리 꽌시가 없는 사람이라도 부모, 형제, 부모의 형제나 친인척, 형제의 배우자, 그 배우자의 친인척 등 사돈의 팔촌까지 적잖은 꽌시를 찾아낸다. 또 이뿐만 아니라 동네 이웃, 동학(통슈에)이라 하여 동창생까지 꽌시로 연결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중국 사람들이 꽌시를 찾아내어 들이미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국 사회는 구석구석까지 그물망처럼 꽌시로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꽌시는 중국인에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공기와 같은 존재다. 꽌시가 전혀 없는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볼 수 없다. 동물적인 의미라면 몰라도...
무슨 일을 하려는데 메이꽌시(몰관계), 즉 꽌시가 없어서 원활히 일을 진행할 수 없다면, 중국인들은 무능력함을 한탄하는 정도를 넘어서 인간적인 굴욕감마저 느끼는 것도 꽌시의 이런 점 때문이다.


해가 떠도 꽌시, 달이 떠도 꽌시
꽌시의 위력이 이 정도인만큼 기존의 꽌시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인들이 꽌시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들이는 정성은 몇 안되는 명절 때에 유감없이 발휘된다.
추석에는 월병(유에빙)이라고 하는 빵떡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꽌시를 확인한다.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춘절(춘지에:우리의 설날)에는 각종 선물 교환으로 약 1-2주일 전부터 모든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구정이 시작되는 날부터 약 2주일 동안은 꽌시가 있는 집들을 일일이 방문한다. 또 방문을 받을 경우에는 대단히 반갑게, 그야말로 정성을 다해 접대한다. 그리하여 다시 1년 동안 꽌시를 통해 많은 것을 이루고, 또 새로운 꽌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중국에서는 왜 이렇게 꽌시가 발달하게 되었나?
중국의 끝없이 넓은 땅 중에는 타민족의 땅을 합병하여 자기 영토로 만든 것이 많다. 자연히 중앙 권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각 성마다 제후들의 지방 분권이 발달하게 되었다. 중앙의 일률적인 제도가 제대로 미치지 못하니 자기 영토 안에서의 '인간 관계'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꽌시가 유래한 것도 이런 중국 역사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각 성 및 각 지방은 또다시 작은 지역으로 나누어지고, 거기에 작은 단위의 꽌시가 발달하여 모든 게 꽌시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꽌시의 지방색
중국 사회가 꽌시로 촘촘히 얽혀 있다 보니 지방에 따라 꽌시의 색깔도 매우 독특하게 드러난다. 땅이 넓다 보니 지방색이 강한 것은 당연한데, 그 지방색에 따라 그곳 꽌시의 성격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동(산뚱) 사람들은 자칭 의리가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만나면 새 친구요, 두 번째 만나면 벌써 옛 친구가 된다. 그리고 친구가 되어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해 사람의 가벼움과 얄팍함을 좋아하지 않으며, 북방인의 무모함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를 끼고 있어 마음이 넓다고도 하며, 산동 사람끼리 산동 반도에서 만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한다.
광동(관뚱) 사람은 이재에 밝고, 장사에 능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돈 구경하려면 광동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광동 사람과 장사해 봤자 큰돈 벌 수 없다고 할 만큼 그들은 결코 손해 보는 법이 없다고 한다.
동북(똥베이)사람은 성격이 활달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남자다워, 어디를 가도 그 성격의 호탕함으로 금방 표가 난다고 한다.
상해 사람은 감각이 발달되어 있어 장사를 잘한다. 형식을 중히 여기고 멋을 부릴 줄 알며 타지방 사람의 촌스러움을 흉본다고 한다. 상해에 가서 옷자랑하지 말고 멋부리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절강(저찌앙)과 복건(후찌앤) 사람은 근면하고 부지런하다고 한다.
북경 사람은 명예를 중히 여기고 예의가 바르다고 한다.
그 외 어느 지방에 가든지 그 지방의 고유한 특징들을 설명하는 말들이 있다.
그 특징에 따라 꽌시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 꽌시
꽌시를 모르면 중국인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장사에서 예를 들어보자. 전세계에서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는 일본인도 중국에서는 크게 성공한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은 거꾸로 중국에서 실패한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대면, 그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꽌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꽌시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데다가, 그들만의 무기인 꽌시를 적절히 이용해서 사업을 풀어 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꽌시는 한 번 맺으려면 당연히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서로 믿지 않으면 결코 맺어지지 않는다. 좋은 꽌시는 서로 믿으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언젠가 자기도 어려운 부탁을 받을 때 자기 일처럼 그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람들은 간혹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뒷돈(Under Table Money)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 한국에선 작은 돈이지만 중국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만큼 많은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의 중국사회를 돈이면 뭐든지 다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의 한국 사회와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의 의식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착각에 불과하다. 중국인은 아무런 꽌시가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꽌시를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처음부터 돈으로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꽌시가 좋고 오래된 사람에게는 돈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보통 일이 원만히 잘 해결되고 난 후의 일이다. 뇌물을 통한 뒷거래는 반드시 꽌시가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을 알려면 우선 꽌시부터 잘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꽌시는 중국을 이해하는 데 첫 번째 요소인 것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꽌시의 나라다.



밥도 먹고 꽌시도 만들고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고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다소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우리에겐 너무 낯설고 고역스럽기까지 한 이런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 꽌시를 만들고 중요한 일을 성사시킨다.

중국에서 꽌시를 만드는 데 제일 많이 이용되는 장소가 바로 식당이다. 식당에서 그들은 기존의 꽌시를 더욱 돈독히 할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꽌시를 연결하기도 한다.
개방과 더불어 자본과 기술을 가진 외국 손님을 끌어들여 투자하도록 만드는 상담도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식당에선 음식만 먹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배갈(빠이쮜오)을 서로 부딪쳐야만 상담도 시작된다. 그리고 한 건 성사되면 또 한 잔 마시며 성대한 식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중국 사람의 심리다.
중국에서 식당은 밥이나 술만 먹는 자리가 아니다. 식당에선 수백, 수천만 달러가 오가는 상담도 이루어지고 중요한 꽌시도 만들어진다. 그래서 중국의 음식 문화는 세계적으로 알아줄 만큼 상당히 발달해 있다.


밥 먹고 합시다!
중국인은 먹는 일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의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겠지만, 어느 정도 먹을 게 해결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못먹던 시절에는 하루하루의 삶이 온통 먹기 위한 전쟁이었으나, 먹는 것이 해결된 오늘날에도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즐거움으로서 역시 '하늘을 받들 듯' 먹고 마신다. 중국인들에게 '밥 먹었느냐' 하는 이야기는 가장 일상적인 인사말 중의 하나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혹은 '배불리 먹었습니다'는 중국인에게 가장 기분 좋은 대답 겸 인사다.
우리도 가난했던 시절에 '식사하셨습니까?', 혹은 '진지(아침) 드셨습니까?' 하는 인사가 서양의 '굿 모닝' 인사처럼 통용되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지금의 중국과 비교해 본다면 대충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짐작할 수도 있겠다.
식사 시간 즈음에 중국인 기사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먹는 일에 대단히 신경을 써야 한다. 상담을 하다 식사 시간을 넘기고 나와 보면 차는 있는데 운전사가 없어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뒷간을 보고 온것처럼 표정을 지으며 밥 먹으러 갔었다고 하면, 나무란다거나 내가 올 때까지 배고픈 것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는 차마 말할 수도 없었다.
상담할 때도 식사 시간이 되면 상담에 맥이 빠지고 만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상담을 계속하든지, 식사 후에 다시 하든지, 같이 식사를 할 입장이 못되면 그 날은 일단 물러나야 한다.


나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리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
확실히 중국의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가장 잘되고 번성하는 장사는 바로 '음식 장사'란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낮에도 마찬가지지만 밤에는 모든 음식점이 거의 만원이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중국의 속담에는 '나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리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 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유명하다는 광동요리(관뚱차이), 사천요리(쓰추안차이)만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흥청거리는 음식점에서 그들은 별 희한한 음식을 즐긴다.
비교적 비위가 좋은 편인 나도 가끔 중국인들이 먹어보라고 권하는 몬도가네식 음식 앞에선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맛을 느낄 겨를도 없다. 그저 두 눈 딱 감고 '이것도 경험이다'는 생각으로 꿀꺽 넘겨버리곤 했다. 뱀고기나 뱀수프, 뱀피, 뱀쓸개즙 등 뱀 요리정도는 이상하거나 눈살 찌푸려지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원숭이의 골 요리나 골 수프가 있고, 거북이 요리, 개구리 내장 요리, 하다 못해 전갈 요리까지 있다.
이름 외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음식점의 요리 종류는 웬만한 곳에가도 보통 50 내지 60종이 넘는다.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여러가지를 시키는데 십중팔구는 남게 시킨다. 중간쯤 가면 상에 접시 놓을 자리가 없어 두세 개를 포개 놓거나, 남은 음식을 다른 접시에 함께 담아 놓고 새 접시를 놓기까지 한다.
그 음식들을 술과 함께 맛있고 배부르게 먹어주는 게 예의다. 상대가 잘 안 먹거나 조금만 먹으면 불안해하고 또 별로 기분 좋지 않게 생각한다. 한 번 식사하면 보통 두 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같이 식사하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고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다소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우리에겐 너무 낯설고 고역스럽기까지 한 이런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 꽌시를 만들고 중요한 일을 성사시킨다.


'한국 가면 배가 고프다'
한중 외교 관계 수립 후 경제 정치 교류가 증가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초대받은 중국 사람이 돌아와서 보통 하는 말이 한국에 가서 "배가 고파 혼났다." 는 것이다.
일 때문에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마침 회사를 찾아온 중국 손님들을 접대할 경우가 있다. 그럼 나는 중국 손님을 주로 뷔페 식당에 데리고 간다. 중국 사람에게 뷔페는 가장 멋진 자리 가운데 하나다. 접시 몇 개를 겹칠 만큼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고 고마워한다. 한국에서 중국 손님을 접대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중국 사람과 좋은 꽌시를 맺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음식 문화를 잘 알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의 음식 문화를 잘 이용할 줄 알면, 이미 시작 전에 반은 좋은 꽌시를 조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선물은 꽌시의 척도

상대가 나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나와 맺은 꽌시를 얼마나 존중하는가가 그들에겐 늘 첫째이다. 선물은 그런 점에서 가격보다도 정성이 담긴 게 중요하다.

식당 문화에서처럼 꽌시와 연결되어 발달한 것이 바로 선물 문화다. 어디를 가거나 처음 꽌시를 맺어야 할 때 중국 사람은 꼭 선물을 준비한다. 바빠서 깜빡 잊어버리고 미처 준비를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제일 먼저 선물 챙기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람은 가장 간편한 선물로 술이나 담배를 준비해 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선물 받을 사람을 신중히 배려해 준비해 온다기보다, 오는 길에 공항 면세점에 들러서 사오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오고가는 선물 속에 익어 가는 꽌시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이런 무성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싸든 싸든지 간에 상대가 얼마나 정성 들여 준비했는가부터 살핀다. 그들의 의식에는 상대가 나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나와의 꽌시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하는 문제가 늘 첫째다. 이렇게 선물을 꽌시의 척도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소한 선물 하나라도 중국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93년 말 중국 정부에서 선물에 대한 규정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얼마 이상의 선물은 받아서는 안되며, 얼마 미만의 것은 받아도 좋다는 규정을 국영 기업체에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는 얼마 안 가서 곧 유명무실해져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로 끝나고 말았다. 중국에서 얼마나 선물이 많이 오가는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한 번은 내가 만났던 거래처 담당자에게 답례로 선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마누라에게 줄 금 목걸이를 해달라"고 하지 않은가. 이 정도쯤 되면 선물의 도를 넘어서 곧 뇌물이나 다름없어진다. 사실 많은 종류의 뇌물이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공짜라면 카탈로그도 띵하오!
선물을 많이 하는 만큼 그들은 선물 받기를 또한 좋아한다. 이 점에는 공짜를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과 일맥 상통하는 게 있다. 우리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공짜를 마다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훨씬 더 심한 듯하다.
중국에서 박람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행사 참관자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도 준비하고 회사를 소개하는 카탈로그도 책상 위에 놓아 한 부씩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수량을 준비해도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3일치 선물을 가지고 가도 보통 반나절이면 없어진다. 한 번 가져간 사람이 몇 번씩, 심할 경우에는 수십 번씩 가져가고 또 소문이 퍼져서 삽시간에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선물을 빼고 카탈로그만 준비해 놓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관심있는 사람들만 한 부씩 가져가는 게 아니라 수십 부씩 가져가는 게 아닌가.
또 저녁과 함께 회사를 소개하는 리셉션에 중국 사람을 초대하면 밥만 먹고 그냥 가버리기가 일쑤다. 그래서 정작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될 때는 자리가 텅 비어서 꼴사납게 보이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서 제일 마지막에 경품 순서를 마련했더니 자리를 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선물은 무조건 다다익선
중국 사람에게 선물은 일상 생활이다. 크고 작은 것 관계없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선물을 주면서 대단히 어색해 하지만 중국 사람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도리어 선물을 주지 못하는 걸 대단히 어색해 한다.
선물에는 직위에 따라 급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중국 사람과 사업상 만날 때 중요한 한두 사람에게는 약간 값이 나가는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비록 값이 비싸지 않은 것이라 해도 가능하면 많은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다.
될 수 있으면 선물은 많이 준비하여 모든 사람에게 다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꽌시를 위해 대단히 좋다. 모두를 친구로 만들 수 있고 모두와 꽌시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 우마차 타고 핸드폰 든 중국(김병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