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은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의 손자로 그 병법서를 집대성한 인물이다. 일찍이 그는 방연이라는 사람과 함께 귀곡 선생 문하에서 공부했다. 이후 방연은 일찍이 위나라의 장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손빈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더구나 손빈이 스승에게 손자병법을 전수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암계를 꾸미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간계와 모략으로 얼룩져 있던 춘추전국시대의 세찬 파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드높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위나라의 장수로 있던 방연은 손빈을 초청한 뒤 위나라의 혜왕에게 소개했다. 그를 반갑게 맞이한 혜왕은 손빈을 부군사로 임명하려 하지만 방연의 권유대로 객경으로 대우하다가 공을 세우면 군사에 임명하기로 했다. 그러나 점차 자신이 손빈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방연은 손자병법을 빼앗은 뒤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하루는 손빈에게 정씨라는 장사치가 찾아와 편지 한 통을 전해 주었다. 이 편지는 손빈의 형인 손평이 아우에게 송나라 왕이 아우와 함께 고국으로 가서 가문을 새롭게 세우는 일에 함께 하기를 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손빈 자신은 이미 위나라에 위탁한 몸이니 형의 말을 따를 수 없음을 알고 대성통곡하였고, 형님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 표현한 답장을 써 이 편지를 전해준 정씨에게 황금 한 덩이와 함께 건네주었다.
하지만 정씨는 방연의 심복이었고, 손빈의 답장을 손에 넣은 방연은 편지 내용을 손빈이 위나라를 배신하고 제나라로 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 혜왕에게 보여주면서 그를 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손빈은 무릎 관절을 잘라내는 월형에 이마에는 사통외국(私通外國)이라는 넉 자를 먹으로 새겨넣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손빈은 방연이 그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손빈이 앉은뱅이가 되자 방연은 거짓 눈물을 흘리며 몸종 하나를 붙여 시중들게 했는데 이에 감격한 손빈은 『손자병법』을 기억나는 대로 필사해달라는 방연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필사가 끝나면 손빈을 죽이려하는 방연의 계획을 알고 있던 몸종은 어느 날 이 음모를 손빈에게 낱낱이 일러주었고, 그때서야 방연의 실체를 알게 된 손빈은 미친 척하면서 방연의 감시의 눈길을 피한 뒤 제나라 위왕의 도움으로 위나라를 탈출하여 제나라로 가 관직을 사양하고 유유자적하며 세월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 위나라의 혜왕이 중산 땅을 잃은 원한을 풀기 위해 방연을 시켜 조나라의 한단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단을 방어하던 조나라의 장수는 방연의 군사에 연전연패했고 이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은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이에 제나라의 위왕은 전기를 원수로, 손빈을 군사로 삼아 지원군을 보냈다.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하자 방연은 부랴부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되돌아왔다. 제나라와 조나라의 양군이 맞붙자 손빈은 짐짓 패하는 척 계속 후퇴하였고, 동시에 제나라군의 야영지에 걸린 솥의 수를 점차 줄여나감으로써 방연에게 제나라 군사가 도망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방연은 의심하지 않고 손빈이 군사를 매복시켜놓은 마릉 협곡으로 들어섰고, 이를놓치지 않은 제나라 군사는 공격을 퍼부었다.

그제야 제나라에 손빈이 있었음을 안 방연은 하늘을 원망하며 자결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원수를 갚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 손빈은 이후 초야에 묻혀 살면서 병법을 연구하다 천수를 마쳤다. 실로 그는 참고 기다리는 자가 승리하고야 만다는 중용의 진
리를 몸으로 증명한 인물이었다.

- 하나를 버리고 셋을 얻는다(이상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