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가량 황우석 교수 바람이 멋지게 불었다. 한국을 순식간에 업그레이드시킨 현장을 본 듯하다. 그가 쓴 '나의 생명 이야기'에는 황우석 신화를 만든 몇 장면이 삽화처럼 숨어 있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등 안대기 클럽'을 만든다. 말이 클럽이지 사실은 '꼴찌 탈출'을 다짐하는 모임이다. 졸업 때까지 방바닥에 등을 대본 기억이 적다고 한다. 가벼움이 박수받는 요즘 기준으론 미련퉁이다. '미련함'은 직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 때 '평생 소와 함께하며 소에 관한 한 최고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별명도 '찍소'다. 뭐든 소처럼 밀어붙인다는 뜻이다. 그런 태도가 훗날 성공을 만드는 힘이 됐을 것이다.

'등 안대기'는 노벨상 반열의 과학자들에겐 일종의 증세인지 200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칼 와이먼 교수도 MIT 대학생 시절 6개월 동안 그랬다. 연구에 빠져 밤을 새우거나, 늦게 들어가 새벽같이 나오니 필요 없다고 기숙사의 방을 빼버린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빠질 수 없다. 어릴 땐 둔재란 소리를 들었지만 누이 마야에 따르면 뭔가 달랐다. "사람들이 소란을 피워도 손에 펜과 종이를 들고 소파에 앉아 소음을 친구 삼아 문제에 몰두했다"고 했다. 황 교수처럼 어린 나이에 장래를 결심했다. 12세 때 유클리드 평면 기하학을 다룬 책을 선물받고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 길이 결정됐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세계를 말하고 싶어서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똑똑해야만 미치는 건 아니다. 김득신이란 조선시대 인물이 있다. 그의 독수기(讀數記)는 기절초풍할 기록을 담고 있다. "백이전(伯夷傳)은 1억1만3000번을 읽고(당시 1억은 10만), 노자전(老子傳)은 2만 번, 목가산기(木假山記)는 1만8000번을 읽었다." 머리가 너무 나빠 한 번 봐선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일화는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외경으로 전해진다.

초등학생이 6시간 공부하는데 대학생은 3시간 한다는 한심한 통계가 나왔다.'결과는 좋아도 공부는 싫다'는 약삭빠른 우리 사회의 한 단면 같다. 그래서 연구 성과에 박수만 치기보다 '공부도 미쳐야 이룬다'는 황 교수의 메시지를 보듬게 사회도 각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분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