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아 온 스트레스가 종종 잠자리에서 악몽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있다. 고3 수험생이 다시 된다든가, 군대에 다시 입대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악몽부터,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통으로 꾸는 악몽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①객석은 청중들로 가득 차고, 연주하러 무대로 나가기 직전 시작 부분이 생각 안 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조차 몰라 당황한다. ②완벽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당당히 무대로 걸어나가는데 갑자기 바지를 안 입은 것을 발견, 혼비백산한다. 연주가들이 공통으로 많이 꾸는 유형의 악몽들이다. 그들이 얼마나 무대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겠다.

농구공을 골대에 던져 열 번 이상의 실패 끝에 드디어 골이 들어갈 때가 있다. 그때의 짜릿한 손맛이 주는 기쁨을, 농구를 마스터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정 위대한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열 번 슛했을 때 열 번이, 천 번 슛하면 천 번 다 골인될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단조로운, 미치도록 단조로운 슛동작을 끝없이 연습해 100%의 성공률을 가진다 해도,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팀의 강한 수비 때문에 회심의 슛이 안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연주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그 곡을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완성할 때까지의 기간은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발전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곡을 어느 정도 완성했을 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골을 성공시키는 것과 같은 상황- 그때부터 끝없는 지루한 반복 연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이겨낸 사람만이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혹독한 수련을 통해 다듬어진 곡을 연주하려 할 때, 연주가는 또 다른 복병, 즉 심리적 중압감이라는 적을 만나게 된다. 연주 날이 다가오면서 전혀 문제가 없던 부분에서 틀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연주가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습 횟수에 비하면 0.01%도 안 되는 실수의 확률인데도 연주회에서는 그 실수가 꼭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이 몸 전체를 누른다. 드디어 연주 하루 전날, 실제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인데도 욱신욱신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 것 같아 감기약을 먹고, 왠지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아 소화제도 복용하고, 멀쩡하던 사랑니가 부어올라 진통제도, 게다가 우황청심원까지 먹는 그야말로 연주만 무사히 끝나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모든 행동이 이루어진다(하기야 그 많은 약을 다 먹으면 정상인도 좀 이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주회 날. 틀릴 것 같다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별짓을 다 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된다. '회전을 하다가 균형을 잃으면 어쩌나. 점프한 뒤 착지할 때 넘어지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을 항상 갖는 발레의 경우는 더욱 혹독하다. 한 번의 실수가 자칫하면 골절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무대에서 2∼3년간 떠나 있어야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마치고 "내가 할 수 있는 100%의 노력을 쏟았는데, 겨우 5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고 울먹이는 제자에게 "그러면 200% 준비하라"하는 스승의 말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시간과 싸워 무대에 우뚝 선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와 환호를 보내자. 그리고 그 직전 단계에서 분투하고 시행착오 중에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진심 어린 애정의 박수를 보내자. 가까운 장래에 그들도 분명히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 우리 앞에 자랑스럽게 나타날 것이기에!

-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