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잘 다스리는 자는 위로는 천시(天時)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지리(地利)를 잃지 않고, 중간으로는 인사(人事)를 잃지 않는 법이다.

기구(器具)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서 타인이 하루에 하는 것을, 나는 1개월 또는 2개월에 한다면 이것은 천시를 잃은 것이요, 밭 갈고 씨뿌리는 방법이 없이 허비가 많고 수확이 적으면 이것은 지리를 잃는 것이요, 장사를 해도 통하지를 못하고 놀고 먹는 자가 날로 많아지면 이것은 인사를 잃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잃는 것은 중국(선진문물)에 관해서 배우지 않음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옛날 신라는 경상도 한 지방만으로써,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막고, 서쪽으로는 백제를 공격했다. 당나라의 10만 군사가 와서 머문 것은 바로 이때이다. 한번이라도 음식을 보내어 군사를 위로하고 접대하는 데 실례가 있다든지 말의 먹이와 군량미가 고갈되었다면 신라의 나라꼴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군사는 좌우에서 지탱하여 성공에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 나라의 넓이가 경상도의 8배가 되나 평시에 녹(祿)을 줄 때 사람마다 한 섬에 지나지 않고 칙사(勅使)가 간 후에는 경비가 탕진되었다. 태평세월 백년에 위에서는 정벌하거나 순유(巡遊)하는 일을 보지 못했고, 아래로는 호화롭고 사치하는 풍속을 보지 못했으나, 가난함이 이에 더욱 심함은 무엇때문인가?

까닭을 말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은 세 줄로 곡식을 심는데, 우리는 두 줄로 심으니 사방 천리가 육백 리가 되며, 다른 사람은 하루갈이에서 곡식 50-60섬을 얻는데, 우리는 20섬을 얻으니 사방 6백 리가 2백 리가 된다. 다른 사람은 곡식 10분의 5를 뿌리는데, 우리는 10분의 10을 뿌리는 것은 일 년의 종자를 잃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배, 수레, 목축,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이 폐지되었으나 강구하지 않으니, 이것은 결국 백 배의 이익을 잃는 것이다. 횡(橫)으로 계산해도 토지에서 손해가 이와 같은데, 종(縱)으로 백 년만 계산한다면 손해가 얼마나 될 지를 모르겠다.

천시를 잃고 지리를 잃고 인사를 잃는 것이 비록 사방 천 리가 되나, 실상은 백 리 정도가 되니, 신라의 백승(百勝)은 우리에게 고이할 것이 없다.

지금 급히 경륜(經綸)할 재사(才士)를 뽑아서 해마다 열 사람을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통역에게 따라 보내 한 사람이 열 사람을 통솔하게 해야 한다.

옛날 질정관(質正官)의 예와 같이 중국에 들어가서 법을 배우고 기구도 사고 혹은 기예(技藝)도 배워 그 방법을 나라에 반포하도록 한다.

한 사람을 세 번 들여 보내고, 세 번 들어가도 효과가 없으면 쫓아내고, 다시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10년 만에 중국의 모든 기술을 배워 얻으면, 사방 천리가 비로소 만 리의 역할을 하고, 3-4년의 곡식을 1년 안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고도 재물이 부족하고, 나라의 쓰임이 넉넉하지 못함은 있지 않았다. 이런 후에 사람마다 비단옷을 입고, 집집마다 금(金)으로 벽을 꾸미고, 여러 사람이 즐기느라고 여가가 없더라도 어찌 백성의 사치를 근심하리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 재부론(財賦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