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째 가는 즐거움은 사력을 다해 일한 뒤 그 대가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홍콩 드림'을 실현한 리 카싱이 평소 즐겨 하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수전노 같은 속물 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러나 분명 그에게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으며 이런 말을 한다고 그를 속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국민학교 문앞에도 안가본 그는 화교 특유의 동물적인 상술로
지구상에 깨알같이 흩어져 있는 5,500만 명의 화교 중에서 가장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그는 개인자산만 70억 달러(5조 6천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을
존중하는 화교사회에서는 그를 언급할 때에는 반드시 그의 이름 앞에
과거 황제를 부를 때에나 사용하던 최고의 극존칭인 따이꿴을 붙일
정도로 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열강의 침탈과 내전으로 중국대륙이 대혼란기에 빠진 1928년 광동성
조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전란을 피해 12세 때
홀홀단신으로 홍콩에 건너왔다. 무학인 까닭에 일자리를 잡을 수
없었던 그는 시계줄과 혁대 행상부터 시작하여, 1950년 어렵게 7천
달러의 돈을 모은뒤 이를 밑천으로 플라스틱 빗과 인조꽃을 만드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본격적으로 기업경영에 착수했다.

그후 그는 홍콩 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땅을 헐값에 사들인 뒤 아파트를 지어 비싼 값에 되파는 방식으로
오늘날과 같은 천문학적 거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축재과정에서 결코 땅 투기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땅을 팔거나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아파트 분양권 등을
나누어줌으로써 몇 배로 보답했다. 그는 남의 돈을 빌려 돈을 버는
이른바 OPM 경영의 귀재였던 셈이다. 미국의 경영전문지 (포브스)는

1994년 화교 최대재벌로 70억 달러를 모은 리 카싱을 꼽았고,
(포춘)지는 그를 1993년도 세계 랭킹 제16위로 뽑았다.
그의 양대 기업은 홍콩 최대부동산회사인 장강실업과 허치슨
왐포아이며, 부동산 이외에도 컨테이너 터미널, 전력, 통신, 호텔,
유통업 등 다양한 업종에 손을 뻗치고 있다.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그의 그룹 주식은 홍콩 전체 상장주식 총시가의 15p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럼에도 그의 도박정신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는 1991년 차남
리처드 리의 도박 같은 아이디어를 전격 수용해 아시아 최초로 24시간
위성 채널 홍콩 스타 TV를 발족시켰다. 당시 세계의 모든 방송인들은
리 카싱이 쪽박을 찰 것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시아 전역에 폭발적 위성방송 붐을 일으켰고,
1993년에는 이를 투자액의 6배가 넘는 5억 2,500만 달러를 받고
오스트레일리아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미련없이 팔아넘기는
뛰어난 상술을 보임으로써 연달아 세계를 감탄케 했다. 그는 아직도
스타 TV의 전체지분 중 3분의 1을 움켜쥐고 있다.

후계자를 길러내는 방법도 화교황제답게 독특하다. 차남 리처드 리의
어린 시절 회고담 한 토막이다.
"내가 여덟 살 되던 해부터 아버지는 나를 그룹 중역회의에
참석시키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의자 하나가 주어졌다. 그러다가 내가
열네 살 되던 해 아버지는 나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맨로 파크에 있는
한 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좁은 숙소 하나만 빌려주었을 뿐 생활비는
내가 벌어야 했다. 졸업 후에는 다른 회사에서 샐러리맨을 해야 했다.
스물세 살이 되던 1990년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나를 홍콩으로
불러들였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이때를 대비해
내가 오랜 기간 준비해온 비장의 카드가 바로 스타 TV 구상이었고,
아버지는 두말 않고 거액을 내주었다."

리 카싱은 과거에는 유럽과 북미에 주로 투자했으나 중국 붐이 일기
시작한 1992년부터는 재빨리 중국 투자로 방향을 선회해, 1993년 말
현재까지 4백억 홍콩달러(4조 원)를 중국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100여 건의 대중국 투자계획도 추진중이다. 그는 특히
1994년 초 중국 건설부의 홍콩 자회사와 함께 홍콩상장기업인
투자전문회사 엠페라 인베스트먼트를 사들였다. 중국의 부동산 매매를
주된 업무로 하고 있는 이 회사를 사들임으로써 리 카싱은 중국 부동산
진출의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밖에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과 수시로 독대하는 유일한
남자로도 유명하다. 덩의 차남 덩쯔팡이 회장을 맡고 있는 상하이
국영기업과 함께 홍콩의 대형완구회사를 사들이고, 덩의 장녀인 화가
덩린이 해마다 홍콩에서 여는 전시회에 반드시 참석해 일부러 비싼
값에 그림을 사주는 등 덩씨 집안과의 친분은 여러 화교재벌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박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