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은 개인 정비에 주로 활용]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는 경제학자이자 저술가로 이름을 얻고 있는 공병호 씨도 유명하다. 그는 새벽 3시면 눈을 뜨는 꼭두새벽형이다. 부지런히 사는 그는 직접 ‘아침형 인간 성공기’라는 책을 편역(編譯)해 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기 계발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대인 아침을 그냥 흘려 보내는 사람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아침형 인간’을 한껏 예찬(?)했다. 세계의 컴퓨터 제왕 빌 게이츠도 오전 3시에 기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삼성그룹이 오전 7시 출근제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회사 때문에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저절로 아침형’도 적지 않다. 김우중 회장 시절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오전 7시 이전에 모든 회의를 마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 현대중공업 간부직원들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이들의 일과는 오전 6시20분 회사에서 시작되는 이른바 ‘간부 조찬회의’로 시작된다. 그 시간에 회사에서 회의를 시작해야 하니, 역순(逆順)으로 계산하면 집에서 새벽 4시쯤에는 일어나야 할 것이다.

조찬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일반 직원과 똑같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때가 오전 8시. 그때부터 2시간에 걸쳐 결재, 직원들과의 미팅 등 회사 안에서 필요한 업무를 본다. 그리고 오전 10시에는 공장이나 현장, 영업처로 뛰어나간다.

그렇다면 CEO들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과연 무엇으로 시간을 보낼까. 일반적으로 아침 시간에 사람들은 세면·배변·식사를 하기에도 바쁘다. 늦잠을 자거나 전날 숙취가 풀리지 않은 날 아침이면 그런 것들마저 대충 생략하고 후다닥 일터로 뛰어나가기 일쑤고…. CEO들도 그럴까. CEO들에게 물어본 두번째 질문은 ‘기상 후 출근길에 나설 때까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였다. 응답 항목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개인 정비(운동·독서·외국어공부 등)와 업무활동(회의 주재, 사교 모임 등)이다. 상대적으로 개인 정비에 활용한다는 응답이 50명(75%)으로 압도적이었다.


[‘아침형 인간 된 지 5년 이상’ 89.6%]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은 (예상했던 것처럼) ‘운동’이었다. 67명 가운데 35명(52%)이나 됐다. 이 같은 응답률은 두번째로 응답률이 높았던 독서(15명, 2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CEO들의 연령대가 대체로 건강관리를 요하는 40대 후반에서 50대에 걸친다는 점, 일과가 시작되면 따로 운동을 위해 빼낼 시간이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운동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된다. 또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그만큼 건강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시간이 없어 지속적으로 운동을 못 한다’는 샐러리맨들이 적지 않은데, 그 바쁘다는 CEO들이 아침 시간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설문 조사 과정에서 ‘아침형 인간’ 붐이 인 이후 아침 시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만난 서울 강남의 스포츠센터 이인석 사장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예전 같으면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보다 낮에 일부러 자투리 시간을 내거나 저녁에 여유가 있을 때 운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아침형 인간’ 붐이 일고 나서는 지난 겨울부터 예전보다 20% 이상 새벽 시간에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침시간을 활용해 뭔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눈에 띄는 변화다. 요즘에는 여기에 ‘웰빙’ 바람까지 불어 아침운동이 성시(盛市)다.”

앞서 현대중공업의 사례처럼 아예 아침시간까지 업무에 투입하는 CEO들도 꽤 많았다. 회의 주재 등 회사 일과를 시작한다는 응답자가 12명(18%)이나 됐다. 조찬 등 사교 모임을 갖는다는 응답은 없었다. 하기는 사교 모임에 나간다고 해도 규칙적으로 시간을 ‘활용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침 시간을 이용해 외국어 공부를 한다는 CEO는 2명이었다. 그밖에 조간신문을 본다거나 이메일을 점검한다는 사람도 있고, 명상을 하면서 하루를 준비한다는 응답도 나왔다. 일찍 일어나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CEO가 되는 사람들’의 특성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만한 대답은, 기자가 판단컨대 아마 세번째 질문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싶다. CEO들에게 내놓은 세번째 질문은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한 지 얼마나 오래됐는가’였다. 응답 수치부터 보면 1년 미만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1~2년 됐다는 이도 1명뿐이었다. 3~4년째 계속 유지해 왔다는 CEO는 6명(9%)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나머지 60명은? 모두 5년 이상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 아니 라이프 사이클을 지속해 왔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아침형” 97% ]

실제로 많은 샐러리맨이 직장에서의 성공을 말할 때 ‘엄격한 자기 관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착착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고 꾸려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몇 달 못 가, 길게는 1년 가량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확실히 CEO들은 다르다. 대다수가 ‘아침형 인간’으로서의 자기 사이클을 5년 이상 지속해 왔노라고, 자부하듯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 ‘아침형 인간’ 붐이 지난해 10월부터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CEO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아침형 인간’으로 자기 생활을 통제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임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회사에서 대우도 받고 지위도 높은 까닭에 그만큼 새벽부터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CEO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5년 이상’씩이나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을 ‘아침형’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67명의 응답자 가운데 2명을 제외한 65명(97%)이 “체질적으로 아침형이 어울린다”고 응답했다. 상대적으로 체질에 맞지 않지만 의식적으로 아침형 라이프 사이클을 유지하려는 사람(노력형)은 2명이었다.

다행스러운 이야기다. 의학적으로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전혀 다른 체질의 사람으로 구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사이클로 생활하거나, 거꾸로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으로 생활 리듬을 의식적으로 바꾸려고 하다 보면 건강 관리나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에서 이와 관련한 생체학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서레이대학의 시아몬 아처 박사팀으로 소개된 이들 연구진은 사람들의 수면(睡眠) 유전자 연구를 통해 ‘올빼미족’(저녁형 인간)이 ‘종달새족’(아침형 인간)을 흉내내려고 할 경우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의 수면 변화는 소위 ‘Per3’라고 하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데 올빼미족, 즉 저녁형 인간의 경우 종달새족에 비해 이 유전자가 짧아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수면이 늦어지는 수면지연증후군도 이런 유형에서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이런 스타일은 저녁에 활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하면 아침에 잠이 몰리게 된다.

그만큼 아침잠이 달고 적절한 시간까지 아침잠을 자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체질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할 경우 오히려 종일 피곤한 상태로 지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공연히 직장에서 꾸벅꾸벅 졸기 전에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CEO들에게 제시한 다섯번째 질문은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을 직원들에게도 권유하는가’였다. 67명의 아침형 CEO들은 이에 대해 3분의 2인 44명(66%)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다. 오전 5시30분이면 일어나는 김부회장은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 자체가 아침형이다. 또 주변에서 ‘아침형 전도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직원들에게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아침형’을 권유한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아침형 인간과 관련한 책을 소개하며 일독을 권한다. “아침 시간이 하루를 좌우하고, 그런 하루가 모여 삶을 만들어 간다”고 믿는 그는 “아침형 인간을 다룬 책에 내가 평소 하고 싶던 얘기들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CEO들이 직원에게 아침형 라이프 사이클을 권유하는 것과 관련, 삼성경제연구소의 장상수 상무는 “경기가 침체하고 위기의식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CEO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침형 인간을 다룬 책들에 많이 담겼기 때문”이라면서 “일찍 일어나 세계 정보도 빨리 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내놓으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반면 ‘직원들에게 굳이 권유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23명이었다. 각자의 라이프 사이클은 각자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이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가령 자신을 ‘저녁형’이라고 소개한 (주)네오위즈의 박진환 대표는 “아침형 인간이냐 저녁형 인간이냐 하는 문제는 타인이 권유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자신의 역량을 제일 잘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는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고,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나한테 잘 맞는다고 해서 남에게 권유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아 좋아” ]

이처럼 5개 문항에 걸쳐 나타난 응답 결과는 ▷CEO 중 열에 아홉은 스스로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체로 오전 6시 전에 일어나며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로 아침시간대를 활용하는 한편 ▷전반적으로 직원들에게도 그같은 라이프 사이클을 권유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CEO들은 아침형 라이프 사이클의 장점으로 어떤 것들을 들까. 자유롭게 서술하도록 한 이 마지막 질문에 52명의 CEO가 혹은 길게, 혹은 짧게 의견을 적어 보내왔다. 그 가운데 CEO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역시 ‘나만의 시간, 나를 위한 시간 활용’이라는 점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상자기사 참조).

일찍 일어나면 그만큼 ‘자신만의 시간’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퇴근 후 4시간의 자유’도 물론 있지만 사실 퇴근 이후 ‘자유시간’을 가지려면 직장동료나 친구,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은 퇴근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관계의 유지’에 신경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아침 시간은 다르다. 직장동료나 친구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가족도 그 시간에는 자고 있게 마련이다. 오롯한 ‘나만의 시간, 나에게 전적으로 투자할 시간’이 바로 아침시간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침형 인간이 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70명의 CEO 중 67명이 아침형이라고 응답해 논의가 그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또 이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적용 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아침형보다 저녁형 라이프 사이클이 더 유리한 사람들도 있다.

아산병원 신경정신과 백상빈 전문의에 따르면 “저녁형 인간은 고독을 즐기며 혼자 노는 데 익숙하고, 일상을 벗어나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밤늦게까지 혹은 밤을 새워가며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최근 아침형 인간 붐을 의식해 ‘살아있는 저녁형 인간’이라는 책을 써낸 주역 연구가 김승호 씨는 “낮이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인 반면 밤은 그런 삶의 가치를 깨우치는 시간”이라고 전제하고 “진정한 인생, 진정한 인생의 깊이를 발견하는 시간이 바로 저녁이며 밤”이라면서 저녁형 인간의 심오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침형이든 저녁형이든 자신의 체질에 맞는 적절한 라이프 사이클을 택하되 그것을 (최소한) 5년 이상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가능할 것 같다. 아침이 됐든, 저녁이 됐든 사실 부지런해서 남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월간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