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덤으로 드립니다

토스트를 사면 날씨와 뉴스, 웃음까지 덤으로 얻어갈 수 있는 가게가 있다. 이화여대 정문 앞 ‘행복을 만드는 토스트’. 짐칸이 달린 빨간 오토바이에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빵을 굽는 하수한씨(34)가 바로 행복한 토스트를 만드는 ‘토스트 아저씨’다.

언뜻 보기엔 여느 토스트 노점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토스트를 굽는 사람도 토스트를 사려고 줄을 서있는 학생들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데. 그 비결은 바로 아저씨만의 생생한 ‘오늘의 뉴스’와 입담에 있다.

“비는 오전까지만 오니까 우산 안 가져 오신 분들 우산 안 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계란을 깨뜨리고 빵을 뒤집는 익숙한 손놀림만큼 하수한씨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담은 따끈따끈한 뉴스들을 건넨다. ‘토스트 아저씨표’ 의 생생한 뉴스는 시사, 날씨부터 대학 총학생회 선거소식까지 다양하다. 매일 인터넷 신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화여대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학생들에게 유용한 소식들을 수첩에 갈무리해둔다. 총학생회 선거기간에는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들러 각 후보들의 성향까지 파악한다고.

5년 전인 1999년 초, 이화여대 앞에서 토스트 장사를 시작한 그도 처음에는 여느 토스트 장사처럼 평범하게(?) 토스트를 구웠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뉴스를 전해주기 시작한 건 3년이 조금 넘었다. “어느 순간부터 토스트를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앞에 있는 한 두 명은 괜찮은데 세번째 사람부턴 기다리는 게 심심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사람들에게 짤막한 뉴스 알려주기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이젠 아저씨의 ‘오늘의 뉴스’가 없으면 토스트에 뭐 하나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추석 기차표 예매 기간이나 학생들 교양과목 시험 기간 같은 것들을 알려주면 많이들 고맙다고 해요” 하고 그는 흐뭇해한다.

토스트 아저씨의 매력은 이 것만이 아니다. 언제나 웃음 가득한 얼굴과 손님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손님들의 아침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기말고사 준비 많이 하세요” 등의 인사는 기본, 토스트 2개를 사가는 학생에겐 “친구에게 점심 대접 받으세요” 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강의시간에 늦지 말라고 수시로 현재 시간도 알려주고 강의시간이 가까워 오면 학생들을 위해 그의 손놀림도 덩달아 빨라진다.

4년 여의 세월 동안 쌓아온 단골 손님들과의 정도 두텁다. ‘행복을 만드는 토스트’라는 가게 이름도 재작년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이 여론 조사해서 지어준 것. “세 살, 한 살 된 우리 아이들 이름도 단골 손님들이 지어주셨어요.” 세 살 배기 아들 승헌이의 이름은 손님들이 당시 한창 인기였던 드라마 ‘가을동화’ 의 송승헌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거라고 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죠. 여기 놓고 간 손님 지갑 한 달 만에 찾아준 사건, 어떤 학생이 휴대폰 놓고 가서 남자친구 전화 대신 받아준 사건, 차비 없는 학생들 차비도 많이 꿔주고·작년 총학생회 선거 땐 학생들이 잘못 가르쳐주는 바람에 낙선한 ‘이화 7755’ 선본이 당선됐다고 오보를 내기도 했어요.(웃음)”

추위와 더위, 비바람 속에서 쉴 새 없이 토스트를 구워야 하는 고된 일 속에서도 아저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을 비우면 그렇게 돼요. 그들이 나를 찾아온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가 없죠. 더구나 아침이잖아요. ‘내일 첫눈 옵니다’ 라는 소식을 전해주면 ‘내일 누굴 만날까, 무슨 옷을 입을까’ 하고 하루 종일 손님들이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토스트를 샀을 때 손님들이 그 이상의 값어치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단골이 된 손님들이 감사인사를 하러 찾아올 때면 그것만큼 큰 보람도 없다는 하수한씨. “덕분에 행정고시 붙었다고 감사하다고 찾아오는 학생, 시집간다고 애인과 인사하러 온 학생들을 보면 전 토스트 구워준 일밖에 한 게 없지만 참 기분이 좋아요. 우리 손님들,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오전 10시5분, 마지막 토스트를 구워내는 아저씨의 ‘마감뉴스’는 인기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예고편이다. “엊그제 예고를 봤는데 앞으로 아리영의 고된 시집살이, 예영이의 새출발, 정보석의 새로운 인물탐구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합니다.” 흥미진진한 아저씨의 입담에 토스트를 먹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유쾌한 아침을 만나고 싶다면 ‘행복을 만드는 토스트’에 들러 보자. 1300원어치의 토스트에 배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웃음 한 바가지에 마음까지 든든해질 테니 말이다.

- OO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