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자비 억자 자비

호주의 밤은 길기도 하다. 잠이 안 온다.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새웠건만 잠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열꽃과 두드러기는, 온몸을 열화지옥의 나찰처럼
만들어간. 분노와, 내 억지 인욕수행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의 삶이었다.
사랑하는 이들 가슴에 못 박은 업이 너무 아리어,
'다시는 누구의 가슴에도 상처내지 않으리라.'
서원 세우고 올리고 또 올린 기도들,
십여 년의 지장기도는 내 생각의 골격을 다시 만들어 가고, 몸뚱이의 뼈대마저
바꾸어 갔다.
사악하고 비열하며 잔인하기까지 했던 마음은 자비와 부드러움으로 채워져
갔고, 안으로는 인욕을 밖으론 따스한 얼굴을 지니며, 마치 지장의 화신처럼
변하여 갔다.
그러나 남은 속여도 스스로는 속일 수 없는 범, 언제나 자신을 괴롭혀 온 것은
확철대오한 깨달음의 세계에 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나의 행위들은 깨달음의 자비에서 흘러나온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아니라,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억지 자비의 마음이라는 점이었다. 한순간도 진정한
자비세계에 대한 목마른 갈망을 놓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영혼의 밑바닥 깨달음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습관적인 용서와
억지 자비의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증거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보겠다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나왔으면,
분명 껄껄 웃는 큰 마음이 되어야 하겠건만, 애를 삭이려고 몸부림하는 모습은
스스로 보아도 민망할 정도이니...


내 자신을 용서하자

만나고 헤어짐에는 사람 의지대로 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가
보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달리, 속가 상좌 재욱이의 차를 타고 장장
11시간 거리의 시드니를 향해 가고 있다.
호주는 참으로 광활하고, 자연을 잘도 보존한 나라이다.
오염되지 않아 공기마저 달콤한, 끝없는 숲속을 지난다.
양떼가 하품을 하며 등을 대고 졸고 있는, 평화롭고 드넓은 초원도 지나고,
파도의 용트림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길을 당장에라도 부숴버릴 듯 포효하는
해안도 지난다.
돌고래 떼가 춤을 추고, 오색 무지개가 다리놓은 아름다운 바닷가에 헐떡거리는
차도 쉬게 한다.
나를 즐겁게 하려는 재욱이의 배려가 가슴으로 느껴 오지만, 그럴수록 아픈
마음은 감춰지지 않고 자꾸만 비어져 나오려 한다.
용서하자!
용서하자!
남을 용서하기 전에 못난 자신을 용서하자!
아! 언제쯤이 돼야, 밑바닥 뼛속까지 사랑과 자비 그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을까?

- 진짜 나와 가짜 나(석용산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