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일기는 나의 스승이요, 친구이자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 자신의 약속의 다짐이요 기록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대할 수 있는 것은 산과 개울 그리고 한없는 노동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읽을 만한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기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까지 나의 생활은 시간과 경제적인 면에서 무척이나 쪼들린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문화 생활을 통한 정서 함양에 소홀함이 없도록 스스로 많은 배려를 했다. 문화비의 지출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남들처럼 문화비 지출을 늘릴 수도 없었던 것이 그 시절 나의 고달픔이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영화 관람이 계획에 들어 있으면 동시 상영관을 찾았다. 음악 감상이 필요하다 싶으면 지금의 카페와 비슷한 음악 감상실로 갔다. 그리고 선열들의 넋이 어린 묘지를 찾아 성묘도 하고 묘비명을 베껴 오기도 했다. 명사들의 강연이 듣고 싶으면 대중 강연회를 찾아 한강 모래밭을 찾았고 부흥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 번은 미술관에 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신문팔이에 구두닦이를
전전하고 청소부가 고작이던 나에게 그림이라는 것은 도무지 낯선 곳에 존재하는 신선놀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길로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몇 시간 동안을 나는 미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서점을 나올 때에는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파왔지만 뿌듯한 성취감으로 허기진 배고픔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여행은 문화비로 충당하기가 어려웠다.
무리해서 그렇게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깡통을 차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품목은 사업 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리하여 1년이면 1년, 기간을 정하여 돈을 모아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결코 곁길로 새는 법이 없다. 자기에게 한 약속과 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곁길로 새다가도 곧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제대로 쓰는 사람은 자기 삶을 누구에 의해 끌려 다니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기 쓰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삶의 참의미를 되짚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이 들어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추억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삶을 풍요롭게 산 것이다.

- 천재는 없다(류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