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me】 시인의 마을

[성유리] 진혼제

2018.09.20 18:01

profe 조회 수:33

어머니 삼베치마를 입은 가오리연이
꼬리로 허공을 차며 솟구쳤다
네 귀퉁이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연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 떠나고 있었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가슴까지 휑하니 비운 모습이
추워보였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는 가는 끈만은
서로 놓아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목 아프도록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난 칼을 꺼내 팽팽한 순간을 그었다
사선으로 끊었다
연은 비로소 가볍게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래 보였다
그런 줄 알았다

아침 까치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
연이 걸려 있었다
이슬에 온통 젖어
날 보고 있었다


- 2005 신춘문예 경인일보 -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0 [외국시]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admin 2015.11.24 25
209 [외국시] 그는 바람처럼 자유롭죠 admin 2015.11.24 33
208 [외국시] 도정(道程) - 타카무라 코타로(高村光太郞) admin 2015.11.24 104
207 [기린섬] - 추억 admin 2015.11.24 33
206 [신석정] 봄을 기다리는 마음 admin 2015.11.24 39
205 [이정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admin 2015.12.02 28
204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admin 2015.12.02 28
203 [노래말] 나는 신기루를 보았다. -화이트 뱅크 admin 2015.12.02 55
202 [도연명] 歸去來辭(귀거래사) admin 2015.12.02 29
201 [외국시] 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admin 2015.12.02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