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논밭 장차 황폐해지거늘 어이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내 마음 몸의 부림 받았거니,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독비)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는가?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으니,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이에 앞으로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

實迷途其未遠(실미도기미원) 실로 길 어긋났으나 멀어진 건 아니니,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지난 것 잘못 되였음에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하리라.

舟遙遙以輕颺(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훨훨 불어 옷자락 날린다.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 길 지나는 사람에게 갈 길 물어야하니,

恨晨光之熹微(한신광지희미) 희미한 새벽빛에 한숨이 절로 난다.

乃瞻衡宇(내첨형우) 저만치 집이 바라다 보이니,

載欣載奔(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듯이 집으로 간다.

僮僕歡迎(동복환영) 어린하인들 모두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치자후문) 자식들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三徑就荒(삼경취황) 세 갈래 오솔길엔 잡초 우거졌어도,

松菊猶存(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예 그대로 남아 있다.

携幼入室(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유주영준) 술통엔 술이 가득 나를 반긴다.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뜰 앞 나뭇가지 바라보며 지그시 미소 짓는다.

倚南窗以寄傲(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있노라니,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좁은 방이지만 편하기 그지없다.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門雖設而常關(문수설이상관) 문은 있으되 늘 닫아 두고 있다.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류게) 지팡이 짚고 다니다가 앉아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때로는 고개 들어 먼 곳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무심한 구름은 산골짝을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

景翳翳以將入(경예예이장입)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 외로운 소나무 쓰다듬으며 홀로 서성거린다.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가자!

請息交以絶遊(청식교이절유) 사귐도 어울림도 이젠 모두 끊으리라!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 다시 수레를 몰고나간들 무엇을 얻겠는가?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 친척 이웃들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거문고와 글 즐기니 근심은 사라진다.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농부들 나에게 봄 왔음을 알려주니,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 서쪽 밭에 나가서 할 일이 생겼다.

或命巾車(혹명건차) 때로는 천막 친 수레를 몰고,

或棹孤舟(혹도고주) 때로는 외로운 조각배 노를 젓는다.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한다.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 싱싱하게 자라나고,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린다.

善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 만물은 제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 이제 나의 삶은 휴식 년을 절감한다.







已矣乎(이의호) 아서라!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복기시) 세상에 이 내몸 얼마나 머무를 수 있으리오!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물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는가?

富貴非吾願(부귀비오원) 부귀영화는 내 바라던 바 아니었고,

帝鄕不可期(제향불가기) 신선 사는 곳도 기약할 수 없는 일.

懷良辰以孤往(회양진이고왕) 좋은 시절 바라며 홀로 나서서,

或植杖而耘耔(혹식장이운자) 지팡이 세워두고 김매고 북돋운다.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어보고,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본다.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갈 것인데,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복해의)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