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me】 시인의 마을

[유안진] 자화상(自畵像)

2016.02.26 17:39

admin 조회 수:113

한 오십년 살고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헝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뒷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 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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