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이른 생을 마친다
흉부 X선 네거티브 필름 속
시들어 가는 폐 한쪽이 목화 이불솜 같던 사내
의 몸이 살며시 길 위에 놓인다
알전구 같은 백목련 봉우리 위 내려앉은
햇살이 필라멘트처럼 떨고 있다
필름 속 세상은 깊고도 어두워
오히려 상처가 환하게 빛난다
부서진 문짝이 바람에 넘어가듯
와락 꽃의 時空이 열린다
사내의 꿈은 오래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목련은 너무 일찍 화촉을 끈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가여운 향기
지상에 남겨진 사내의 여자가
타 들어간 향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고뇌 속을 가다*가 관속에서 펼쳐지고
들린 관짝에 매달린 사내 아버지가 소처럼 울먹인다

벽제 시립화장터, 막 이승을 지나온 장의버스가
저승문턱에 걸려 덜커덕 시동 꺼지는 소리 들린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화구 속에
죽은 사내 혼자 남겨 두고 천천히 그러나 재빨리
국수 한 그릇 말아먹고 죽은 사내 생각하며 이 쑤실 때
바람을 걸쳐 입은 촛불처럼
누군가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린다
저 불타버린 성냥골처럼 가느다란 뼈는 아마도
사내의 따뜻한 심장을 감싸주었던 늑골이었을까
뼛가루 한 줌씩 움켜 쥔 채 사람들 흩어지고
사내도 흩어진다 살아남은 자들은 개미처럼 줄지어
해마다 학사주점 왕개미집으로 2차 가고
개미처럼 뒤돌아보며 다시 흩어지고
내년에 다시 보자고,
잘 가, 외마디 소리에
뉘 집 목련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