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142번 서울대―수색 버스를 기다리네
어떤 날은 나 가지를 잘리운
버즘나무 그늘 아래서 72-1번 연신내행
버스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그녀의 집에 가는 542번 심야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있네
앙상한 가로수의 은밀한 상처들을 세며
때로는 선릉 가는 772번 버스를
수없는 노래로 기다리기도 하네
그러다 기다림의 유혹에 꿈처럼
143번 버스나 205-1번 혜화동 가는 버스를
생으로 보내버리기도 하고
눈 오는 마포대교를 걸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나 실연의 시를 적기도 했다네
어느 한 날은 205번 버스나 50-1번 좌석버스를
깊은 설레임으로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그 짧은 연애를 끝으로 눈 내리는 날에서
꽃이 피는 날까지
그런 것들은 쉽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네
패배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들, 이를테면
성남에서 영등포까지, 홍등이 켜진 춘천역 앞을
지나던 그 희미한 버스들을
이제 나는 잊었네
나 푸른 비닐 우산의 그림자 안에서
기다림의 끝보다
새로운 기다림 속에 서 있음을 알겠네
오늘도 나 147번 화전 가는 버스나 133-2번 모래내
가는 버스를 기다리네
이제는 더 이상 부를 노래도 없고
어느 누구도 나의 기다림을 알지 못하네
오지 않네, 모든 것들
강을 넘어가는 길은 멀고
날은 춥고, 나는 어둡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