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배탈이 났을 때만이 아니라 머리가 아프거나 심한 외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발에 생긴 무좀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약을 입으로 먹는다(물론 주사를 맞을 때도 있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래도 신기하게 약의 효과는 나타난다.

그러면 약이 어떻게 하여 그런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 '작용기전'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그러한 작용기전이 완전히 해명되지 못한 채, 다만 경험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용되는 약도 적지 않다. 여기서는 약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대사되고 배설되는지 등에 대해서(그러한 과정들을 통틀어 '약의 일생'이라 할 수 있다), 즉 약의 효력이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끝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약의 기전에 대해서도 약간의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약이 우리 몸에 들어가서 '어떤 경로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어떻게 빠져 나오게 되는가'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약이 우리 몸에 들어가게 되는 형태를 알아보자,

#1 입으로 먹는다(소화기 계통에 투여).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약의 형태는 소화관에 약을 투여하는 방법인데, 그 중에서도 경구 투여(내복약)가 가장 많고, 그 밖에 설하 투여(혀 밑의 점막으로 통해 약물 흡수), 직장내 투여(좌약이나 관장으로 점막 흡수) 등이 있다.

#2 주사약으로 투여한다.
주사약으로 투여할 때는 근육 주사(엉덩이 주사)가 가장 많고, 피하 주사(인슐린 주사나 호르몬 주사 등), 정맥내 주사 (링게르액 주사, 영양수액 주사 등)등도 많이 이용되며, 그 밖에 동맥내 주사, 뇌척수강내 주사, 복강내 주사, 관절내 주사, 피내 주사, 심장내 주사 등이 있다.

#3 바른다.
또한 외용 연고, 소독약, 질좌약과 같이 아픈 부위에 외용적으로만 사용하는 예도 많다. 우선 약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내복약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살펴 나가기로 하 자. 주사약은 약간씩 과정이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사이클에 합류한다.

우리가 어떠한 약을 먹었을 때 그 약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곳을 찾아가는 길은 다름 아닌 혈관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음식을 먹었을 때 그 음식이 소화되어서 영양분으로 바뀌고 그 영양분이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는 길 역시 혈관이다. 음식물이 소장의 모세혈관을 통해서 흡수되듯이 약도 소장에서 비로소 혈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혈관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혈관을 타고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장을 거쳐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기 전에 약은 간을 거쳐야 한다. 해독 작용을 하는 간에 이르면 약으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우선 간은, 약이 우리 몸을 위해 온 손님이지만 약을 손님으로 대접하지 않고 다른 물질로 간주한다. 우리가 항상 먹는 음식과 비슷한 영양제라면 모르지만 항생제나 기타 화학 물질로 만들어진 약은 여기서 독물로 간주된다. 간은 니코틴이나 알코올을 분해하듯이 여러 종류의 효소를 동원하여 약을 여러 가지 다른 물질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이것을 대사 작용이라 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각종 중간 대사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 중간 대사 물질 중에는 간의 조직을 파괴하고 암을 유발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도 있다. 여기서 약은 일
단 간에 부담을 주고, 나아가 몸에 치명적인 독물로 작용하기도 하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서 다 분 해(대사)되어 버리면 약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제약회사에서 약을 만들 때 나름대로의 장치를 하여 약효가 나도록 만들기는 하지만 입으로 먹는 약은 거의 대부분이 간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먹는 약일 경우 주사약보다 2배 가량 많은 양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에서 약이 대사될 것을 예상해서이다. 주사약의 경우에는 약효를 발휘하기 전에 간을 거치지 않는다. 그래서 주사약은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약효의 지속성을 생각한다면 먹는 약이 주사약보다 유리하다. '흡수 과정'이라고 표현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미처 다 처리되지 못한 약이 심장을 거쳐 온몸을 돌게 되는 것이다.

- 약이 되는 약 이야기(이미영)